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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죽여주는 여자》 정보와 줄거리, 평가와 반응, 세 남자의 죽음이 내게 남긴 질문

카이로스11 2026. 9. 16. 14:54

목차


    정보와 줄거리

    2016년 개봉한 이재용 감독의 영화 《죽여주는 여자》는 윤여정이 65세의 ‘박카스 아줌마’ 소영을 연기한 작품입니다. 소영은 종묘공원 일대에서 노인들을 상대로 생계를 이어가던 중, 병원에서 만난 사람들과 주변의 소외된 사람들을 돌보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단골 노인들이 자신의 죽음을 도와달라고 부탁하면서, 소영의 삶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이 영화는 제66회 베를린국제영화제 파노라마 부문에 공식 초청되었으며, 국내에서는 2016년 10월 개봉했습니다.

     

    평가와 반응

    국내에서는 노인 빈곤과 소외, 성매매, 장애, 다문화 가정 등 한국 사회의 여러 문제를 한 작품 안에서 다룬 점이 주목받았습니다. 연합뉴스는 특히 영화가 노인 문제를 중심에 두면서 여러 사회적 소외의 모습을 함께 담았다고 평가했습니다. 해외에서도 윤여정의 연기와 영화의 대담한 주제가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The Guardian은 윤여정의 연기를 영화 전체를 붙잡는 힘으로 평가하면서도, 영화가 너무 많은 이야기를 담았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지적했습니다. Time Out은 5점 만점에 4점을 주며, 노년의 성과 죽음이라는 무거운 소재를 현실적인 분위기와 유머로 풀어낸 점, 그리고 윤여정의 연기를 높이 평가했습니다. 현재 MUBI에서는 이용자 평점이 8.7/10으로 나타나며, 해외 비평에서는 윤여정의 절제된 연기와 사회의 주변부에 놓인 사람들을 바라보는 영화의 시선이 반복적으로 언급됩니다.

     

    세 남자의 죽음이 내게 남긴 질문

    외로움과 죽음은 생각보다 가까이 붙어 있다. 

    《죽여주는 여자》를 다시 보았다. 처음 보았을 때도 충격적이었지만, 다시 보니 훨씬 더 무거웠다. 이번에는 소영보다 소영에게 죽음을 부탁하는 노인들의 마음이 더 오래 남았다. 그들에게 공통적으로 있었던 것은 병이나 가난만이 아니었다. 외로움이었다. 아무도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 가족이 없거나, 가족이 있어도 자신에게 차갑고, 나와 함께 보낸 시간을 추억하며 아쉬워하는 사람이 없다는 느낌, 어쩌면 외로움은 병의 고통보다 더 무서운 것인지도 모른다. 소영 자신도 젖도 안뗀 아이를 입양 보내고 난 뒤, 핏줄이라고는 아무도 없는 사람이다. 그런 소영에게 죽고 싶다는 노인들이 찾아왔을 때, 소영은 그들을 단순히 ‘죽고 싶은 사람’으로 본 것이 아니라 자신과 같은 외로운 사람으로 바라보았을 것이다. 소영은 그들을 죽인 것이 아니라, 어쩌면 그들의 외로움 속으로 함께 들어간 것일지도 모른다.

    소영은 살인자인가?

    소영에게는 살인의 동기가 전혀 없었다. 돈을 받기 위해서도, 원한이 있어서도 아니었다. 그녀는 그저 죽고 싶다는 사람이 원하는 것을 해주었을 뿐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살인인가, 아니면 마지막 부탁을 들어준 것인가?” 영화는 쉽게 대답하지 않는다. 오히려 세 사람의 죽음을 차례로 보여주면서 그 질문을 점점 더 대답하기 어렵게 만든다.


    첫 번째 남자, 세비로 송은 손끝 하나도 움직일 수 없는 중풍 환자였다. 소영이 농약을 입에 넣어주어야 했다.
    두 번째 남자, 치매환자인 종수는 소영과 함께 산에 올라가 절벽 앞에 스스로 선다. 이제 소영은 죽음을 실행하는 사람이라기보다, 그의 선택이 실패하지 않도록 지켜주는 사람이 된다.
    그리고 세 번째 남자, 재우는 5년전 아내를 잃고 혼자 외롭게 살아온 사람이다. 그는 두번째 남자 종수의 친구다. 친구를 죽게 도와달라고 소영에게 부탁한 사람이다. 친구가 떠나고 나서 그는 소영을 고급 호텔로 데리고 가서 멋진 저녁식사를 하고 함께 투숙한다. 그리고는 자신의 외로움을 처절하게 털어놓는다. 나는 처음에 그가 소영에게 청혼하려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가 원했던 것은 새로운 삶이 아니라 마지막 가는 길에 함께 있어 줄 사람이었다. ‘누군가 옆에 있으면 편히 떠날 수 있을거 같아서…’ . 그는 소영에게 수면제를 한 알 건넨다. 그리고 자신은 한 움큼을 삼킨다. ‘나는 깨어나지 않을 긴긴 잠을 자는 것뿐이고 소영씨는 한숨 자고 일어나는 거라고 생각하면 되는 거야. 나를 위해 좋은 일을 해주었구려. 잊지 않으리다’’ 남자는 정장을 입고,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 정리한다.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처럼. “나는 이렇게 떠나고 싶다.”

     

    아침에 눈을 뜨고 남자의 죽음을 확인한 소영의 눈에서 굵은 눈물이 떨어진다. 영화에서 소영은 딱 한번 운다. 그 순간 소영이 어떤 사람이었는지가 선명해진다. 소영은 단순히 사람을 죽여주는 여자가 아니었다. 죽음의 길을 혼자 가고 싶지 않은 사람의 마지막 동행자였다. 연행되어 가는 경찰차 안에서 경찰의 담배를 얻어 피우는 소영의 모습, 자기 할 일을 다 마쳤다는 듯, 더 이상 아무 미련도 없다는 듯, 평안한 얼굴이 더 슬프게 다가온다. 그 장면에서 소영이 이미 죽음의 문턱을 넘어버린 사람처럼 느껴졌다 ‘차라리 잘 됐지 뭐. 양로원갈 형편도 안되고 거기가면 세끼 밥은 먹여 주는거잖아요. 요즘은 반찬이 뭐가 나오나? 올겨울은 안 추웠으면 좋겠다’

    존엄하게 죽을 권리가 인간에게 있는가?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존엄하게 죽을 권리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누군가 죽기를 간절히 원할 때, 우리는 그 사람의 선택을 어디까지 존중해야 하는가. 존 듀이가 말한 것으로 알려진 “인간 본성의 가장 깊은 충동은 중요한 사람이 되고 싶은 욕망이다”라는 말이 있다. 그건 살아서는 물론이고, 죽음을 눈 앞에 둔 순간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인간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자신의 삶이 의미가 있었다고 느끼고 싶어한다. 죽고 싶다는 말 속에도 어쩌면 “내 삶은 이제 어떤 의미가 있는가?”라는 질문이 들어 있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세번째 남자 재우처럼 마지막까지 내가 택한 방식으로 존엄하게 떠나고 싶은 욕망, 그걸 누가 잘못 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아무리 다른 사람에게는 하찮아 보이는 삶이라도, 그 삶을 살아가는 당사자에게 자신의 삶은 결코 하찮지 않다. 소영에게 도움을 요청한 노인들도 한때는 가족이 있었고, 사랑이 있었고, 자신이 누군가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였던 시간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자신의 존재가 다른 사람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느끼게 된 것이다. 그때 죽음은 “나는 더 이상 아무에게도 필요치 않은 사람이다.” 라는 고통스런 감각에서 벗어나는 마지막 선택지처럼 보였을 수도 있다.

    《죽여주는 여자》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

    영화가 소영의 행동을 통해 우리에게 정답을 알려주지는 않는다. 대신에 우리가 외면하고 싶었던 질문을 스크린 위에 올려놓는다. “죽음을 선택할 권리도 인간의 존엄에 포함되는가?” “살아 있는 것만이 언제나 최고의 가치인가?” “가족이 없고, 치료할 방법도 없고, 극심한 고통 속에 있는 사람에게 우리는 무엇을 말할 수 있는가?” 이런 질문을 사람들이 함께 생각하기 시작하는 것 자체가 어쩌면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가는 과정일 수 있다. 《죽여주는 여자》는 죽음에 관한 영화인 것 같지만, 결국 인간이 마지막까지 인간으로 남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묻는 영화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나는 아직 살아갈 이유가 많다. 그래서 오히려 이 영화를 보며 죽음을 생각하기보다, 살아 있는 동안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을 더 생각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