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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와 줄거리
정보
- 영화 제목:《리빙》 (Living)
- 2022년 · 영국 · 드라마
- 감독: 올리버 허머너스
- 각본: 가즈오 이시구로
- 주연: 빌 나이, 에이미 루 우드, 알렉스 샤프, 톰 버크
- 러닝타임: 약 102분
- 원작: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이키루》(1952)
줄거리
1950년대 런던. 윌리엄스는 시청에서 오랫동안 근무해 온 공무원이다.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고, 서류를 처리하고, 퇴근하는 생활을 반복한다. 업무는 관료주의 속에서 제자리걸음을 하고, 그의 삶에도 기쁨과 활력이 없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불치병 진단을 받고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지금까지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일상은 더 이상 예전과 같을 수 없다. 방황하던 윌리엄스는 젊은 동료 해리스를 통해 자신이 잊고 살았던 생생한 삶의 감각을 마주한다. 그리고 오랫동안 책상 위에 방치돼 있던 어린이놀이터 민원에 다시 관심을 기울인다. 그에게 놀이터를 만드는 일은 단순한 업무가 아니다. 남은 시간 동안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일을 발견하고, 다른 사람에게 기쁨을 남기는 일이 된다. 하지만 윌리엄스의 변화가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어질 수 있을까? 영화는 한 사람의 마지막 여정을 통해 우리가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묻는다.
평가와 반응
Rotten Tomatoes · 평론가
96% 평론가 리뷰 222개 기준으로 표시된 수치
Metacritic · 평론가
81/100 40개 평론 기준
해외 평론에서는 특히 세 가지가 호평을 받았다. 빌 나이의 절제된 연기: 감정을 과장하지 않고 말투와 작은 몸짓으로 인물의 변화를 보여준다는 평가가 많다. 삶의 의미를 다루는 방식: 죽음을 앞둔 인물의 이야기를 지나치게 감상적으로 만들지 않고 조용하게 풀어낸다는 점이 호평을 받았다. 원작의 재해석: 구로사와 아키라의 《이키루》를 영국의 시대극으로 옮기면서 원작의 주제를 새롭게 전달했다는 평가가 있다. 다만 모든 평가가 무조건적인 찬사는 아니다. 일부 평론가는 영화의 절제된 연출이 지나치게 억제되어 보이거나, 인물의 슬픔이 충분히 표현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관객 반응에서도 빌 나이의 연기와 영화를 본 뒤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는 점이 자주 언급된다. 반면 전개가 느리고 감정을 절제한 연출이 취향에 맞지 않는다는 반응도 있다.
나는 정말 살아있는가
불치의 병으로 앞으로 살 날이 일년도 안 남은 로드니 윌리엄스, 영화《리빙》은 그가 남은 시간을 어떻게 살다가 죽어갔는지를 보여주는 영화다. 시한부 삶을 선고 받은 환자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는《리빙》말고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나에게 특별했던 이유가 있다. 나는 영화 속에서 윌리엄스가 어떻게 살다가 어떻게 죽어갔는지보다 그가 죽고 다시 살아나는 모습을 보았다. 윌리엄스는 자신이 누구인지 알게 되었고, 자신이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이 뭔지 알아냈으며, 결국엔 그것을 해냈다.
좀비는 어떻게 살아 있는 사람이 되는가
윌리엄스는 런던시청 공무원이다. 어렸을 적 꿈꾼대로 양복 입은 신사가 되었고, 매일 런던으로 규칙적으로 출퇴근한다. 업무처리는 기계적이다. 기계적으로 처리되지 않는 업무는 그대로 책상 위에 쌓아놓는다. 일처리는 미룰 수 있는 한 미루는 것이 지혜다. 책상 위에 서류 더미가 높이 쌓일수록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으로 인정받는다. 그러다 보니 사무실에는 특별히 어려운 일도 없고, 그렇다고 기쁜 일도 없다. 오늘이 가면 내일이 오듯, 그저 하루하루를 넘기면 된다. 자신은 살아서 움직인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죽은 좀비 같은 삶이다. 남은 시간이 많지 않음을 알게 된 윌리엄스는 비로소 자기 삶을 되돌아보기 시작한다. 평소 못 해 본 것들을 해보려고, 즐기는 삶을 살아보려고, 은행에서 돈을 뽑고, 무단 결근을 하고 여행을 떠난다. 인간이 죽음 앞에 서면 다 똑같은 마음이 되는 걸까? 윌리엄스도 예외는 아니었다. 처음 본 사람에게 아들에게도 못한 자기 이야기를 털어놓고, 술을 마시고, 고향을 그리는 노래를 부르고, 젊어보이는 옷과 모자를 산다. 평소의 윌리엄스라면 상상하기 어려웠을 행동들을 하면서 자기를 바꿔보려 하지만 여전히 죽는게 두렵다.
다시 돌아온 윌리엄스, 새 직장을 위한 추천서가 필요하다며 다가온 옛 직장동료 해리스, 윌리엄스는 그녀를 보며 살아있다는 느낌이 뭔지 알게 된다. 감정을 드러내고, 자기 욕망에 솔직하고, 삶을 자기 방식으로 살아가는 생생함, 윌리엄스는 그제야 자신이 무엇을 모르고 살았는지 깨닫기 시작한다. 목숨이 붙어 있다는 것과 살아 있다는 것은 같은 것이 아니었다. 윌리엄스는 해리스가 붙여준 좀비라는 별명에 동의한다. 그게 바로 자신의 틀에 박힌 삶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윌리엄스는 “하루라도 너처럼 활기차게 살 수 있다면 좋겠다” 라고 고백한다. 그날 저녁 윌리엄스는 좀비의 삶을 끝내고, 살아있는 삶으로 들어가는 길을 드디어 찾아낸다. 나는 이 날 윌리엄스가 죽고 다시 살아났다고 생각한다.
생명을 얻는다는 것
윌리엄스는 다음날 곧바로 업무에 복귀한다. 이전의 윌리엄스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돌아왔다. 공습으로 황폐해진 곳을 어린이놀이터로 만들어 달라는 민원인들의 간절한 호소, 윌리엄스의 책상 위에 쌓여있던 그 일이 이제는 최우선 과제가 된다. 그 일을 위해서라면 어떤 부서, 어떤 사람도 만날 수 있고, 어떤 간절한 읍소도 할 수 있다. 신입사원에게 모자를 벗고 정중하게 인사를 하는 것도 윌리엄스의 달라진 모습이다. 말투, 걸음걸이, 생각의 속도, 심지어 악수하는 모습에서조차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이 느껴진다.
일하는 모습보다 장례식을 먼저 보여준 이유
그리고 영화는 바로 윌리엄스의 장례식으로 넘어간다. 예상치 못한 반전에 깜짝 놀랐다. 내가 뭘 잘못 봤나? 윌리엄스가 아직 일을 시작도 안했는데, 일하는 모습보다 장례식을 먼저 보여준 이유가 뭘까? 윌리엄스는 자신이 할 일을 완벽하게 마치고 죽었다. 그 일에 대한 지역 주민들의 반응은 놀라웠고 윌리엄스를 향한 감사의 마음으로 충만했다. 그렇다면 윌리엄스는 그 일을 위해 어떻게 뛰었으며, 직원들은 그걸 어떤 의미로 받아들였을까? 그걸 영화는 다큐멘터리로 보여주는게 아니라 직원들의 회고를 통해 보여준다. 장례식이 끝나고 돌아가는 열차 안에서 직원들은 그들이 실제로 윌리엄스에게서 받았던 영향력과 감동을 내놓는다. 나는 열차 안에서 이어지는 길고 섬세한 대화가 영화 전체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고 본다. 대화를 통해 윌리엄스의 삶의 의미가 드러나고 정리된다. 동시에 함께 놀이터를 만들었던 직원들이 어떤 사람인지가 드러난다.
윌리엄스와 함께 했던 사람들이 두 부류로 나누어진다. 윌리엄스의 뒤를 이어 책임자가 된 미들턴은 과연 이 일의 공이 누구의 것인가? 앞으로 누가 그 덕을 볼 것인가?에 관심이 있다. 그리고 그가 제안한다. “윌리엄스가 확실한 모범을 보여줬다. 그의 교훈을 따르자. 우리도 앞으로 책임 회피하지 말고 잘해 보자” 이게 바로 좀비가 하는 말이다. 그러나 피터는 다르다. 이 불가능했던 일의 추진력이 어디서 나왔을까? 그는 윌리엄스라는 사람 자체에 관심이 있다. 그래서 놀이터 때문에 달라진 윌리엄스의 변화를 강조한다. 좀비의 삶이 끝나고 생명으로 태어난 사람과 좀비인 채로 사는 사람의 차이를 보여주기 위해서, 영화가 의도적으로 장례식을 먼저 보여주고, 이어서 직원들이 대화로 그 의미를 풀어내도록 설정한 것이 아니었을까? 여기서 나는 영화의 섬세하고 탁월한 설정에 다시 한번 감탄했다.
나는 영화가 결론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윌리엄스의 변화는 자신 뿐만 아니라 타인의 삶까지 바꾸었고, 그가 한 일은 함께 했던 사람들의 기억에 오래 남았다. 그러나 미들턴의 제안은 스스로도 지켜내지 못했고 하루만에 무너졌다. 윌리엄스는 좀비의 삶을 끝냈기 때문에 생명이 뭔지 알고 받아들일 수 있었다. 어떤 오해를 받던 어떤 욕을 먹던 개의치 않을 힘을 얻었다. 거기서 추진력이 나온 것이다. 그러나 미들턴의 반성과 제안은 좀비인 자신에게서 나온 것이다. 그래서 힘이 없었다.
생명을 가진 사람들은 서로를 알아본다
피터와 해리스는 윌리엄스를 알고 윌리엄스가 변화하는 걸 가까이서 지켜 본 사람들이다. 타인의 시선에 함몰되지 않고 자유롭게 일하는게 뭔지 아는 사람들, 살아있다는 느낌이 뭔지 아는 사람들, 아직 때묻지 않은 사람들이 연인이 되어가는 모습이 아름답다. 생명을 가진 사람들은 서로를 알아본다. 그래서 윌리엄스는 피터에게만 ‘사적인 비밀’ 이란 글을 남긴다.
“우리가 만든 놀이터가 영구적인 기념물은 아니다. 거창한 계획들 때문에 머지 않아 사라질 수도 있다. 어떤 목표를 위해 매일 애쓰는 건지 확신할 수 없는 날들이 찾아올 때 이 놀이터를 만들며 느꼈던 소박한 보람을 떠올려보길 바란다. “
놀이터라는 결과물보다 더 소중한 것은 그 일을 통해 경험한 보람이었을 것이다. 다른 사람을 위해 무언가를 해낼 수 있다는 기쁨, 자기 삶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감각 말이다. 윌리엄스에게는 눈에 보이는 놀이터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살아있다는 느낌, 보람, 기쁨이었다. 윌리엄스는 눈이 내리는 추운 밤, 그네 위에 앉아 고향과 어린 시절의 추억 속에서 노래를 부른다. 서서히 멈추는 그네줄, 윌리엄스는 그렇게 행복하게 떠나갔다. 그러나 아이들의 그네줄은 힘차게 위로 위로 올라간다. 윌리엄스는 죽음 앞에서 자신이 좀비처럼 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비로소 생명을 얻었다. 그 생명은 그를 자기 삶의 주인으로 만들었고, 다른 사람의 간절함을 외면할 수 없는 사람으로 바꾸어 놓았다. 모진 반대를 무릅쓰고 어린이놀이터를 만들어 낸 것은 그 변화의 결과였다. 목숨이 붙어 있는 것과 생명 있는 삶을 사는 것은 다르다. 윌리엄스는 죽음을 앞두고서야 그 차이를 깨달았다. 나는 정말 살아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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