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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와 줄거리
정보
- 제목: 《미나리》(Minari)
- 감독·각본: 리 아이작 정(Lee Isaac Chung)
- 출연: 스티븐 연, 한예리, 윤여정, 앨런 김, 노엘 조, 윌 패튼
- 개봉: 2020년 선댄스 영화제 초연, 2021년 극장 개봉
- 장르: 드라마
- 러닝타임: 115분
- 배경: 1980년대 미국 아칸소
- 제작: Plan B Entertainment
- 배급: A24
- 《미나리》는 한국계 미국인 가족이 미국 아칸소의 시골로 이주해 농장을 일구며 살아가는 이야기다. 감독 리 아이작 정 자신의 어린 시절 경험에서 출발한 작품으로, 2020년 선댄스 영화제에서 미국 극영화 부문 심사위원대상과 관객상을 함께 받았다. 이후 아카데미 작품상 등 6개 부문에 후보로 올랐으며, 윤여정은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줄거리
제이콥과 모니카는 두 아이와 함께 캘리포니아를 떠나 아칸소의 시골로 이주한다. 제이콥은 이곳에서 한국 채소를 재배해 성공하겠다는 꿈을 품고 농장을 시작한다. 하지만 모니카는 처음부터 불편한 시골 생활에 적응하지 못한다. 제이콥은 아내가 반대할 것을 알기 때문에 자신의 계획을 충분히 설명하지 않았고, 그래서 두 사람은 시작부터 삐걱거린다. 아이들은 낯선 환경에 적응해야 하고, 아들 데이빗은 심장에 문제가 있다. 농장에는 물이 부족하고 토네이도의 위험은 늘 있다. 한국에서 할머니 순자가 미국으로 건너와 함께 살게 되면서 가족에게 또 다른 변화가 생긴다. 순자는 아이들이 생각하는 미국 할머니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다. 화투를 치며 욕도 하고, 남의 컵에 입을 대고 물을 마시며, 아이를 돌보는 방식도 익숙하지 않다. 가족은 계속 부딪히고 흔들린다. 그리고 제이콥이 온 힘을 다해 만들어온 농장 창고가 예상치 못한 화재로 무너진다. 모든 것이 사라진듯 보이는 그 순간, 영화는 전혀 다른 곳에서 조용히 자라고 있던 한 생명을 보여준다.
평가와 반응
《미나리》는 2020년 선댄스 영화제에서 미국 극영화 부문 심사위원대상과 관객상을 받으며 주목받았다. 이후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여우조연상, 각본상, 음악상 등 6개 부문 후보에 올랐으며, 윤여정이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평단에서는 이민자의 삶과 가족 이야기를 거창한 갈등이나 사건보다 일상의 모습으로 담아낸 점, 배우들의 자연스러운 연기와 따뜻하면서도 현실적인 시선에 높은 평가를 보냈다. 특히 한국계 이민자의 이야기이면서도 특정한 인종이나 문화를 단순한 가해자와 피해자로 나누지 않고, 한 가족이 낯선 환경에서 살아가는 보편적인 이야기로 확장했다는 점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좌절 속에서도 계속 자라나는 희망
다시 본 《미나리》, 긴장하게 만드는 영화
예전에 이 영화를 보다가 중간에 그만둔 적이 있다. 영화가 조금 지루하게 느껴졌었기 때문이다. 사실 앞부분만 보면 심심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영화다. 그러나 끝까지 보고 나면 달라진다. 앞에서 천천히 쌓아놓은 장면들이 뒤늦게 의미를 드러내며 깊은 감동을 준다.《미나리》전체에는 계속 긴장을 풀지 못하게 만드는 뭔가가 있다. 마음이 농장에 정착하지 못하고 늘 불안해하는 모니카와 제이콥의 관계, 아이의 심장병, 할머니 순자의 튀는 행동, 토네이도의 위험, 물이 부족해지는 상황, 낯선 엑소시스트의 등장 등 쉽게 빠져나올 수 없는 긴장이 영화 전체에 깔려 있다.
실제 이민 가족의 모습, 그리고 한국 할머니터
제이콥은 미국 땅에서 남이 시키는 일이나 하며 살지 않겠다, 내 삶은 내가 만들어내겠다는 자존심이 강한 남자다. 그러나 모니카는 불편한 환경에서 아이들을 키우는 것이 몹시 불안하다. 제이콥은 이제 시작하는 농장 일보다 더 힘든 것이 모니카를 설득하는 일이다. 결국 두 사람은 영화 내내 의견이 충돌하는 모습을 보인다. 나는 이 모습이 오히려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제이콥이 농장에 매달리는 것도 가족을 위해서이고, 모니카가 불안해하는 것도 가족을 지키고 싶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갈등은 미국이라는 낯선 상황에서 벌어지는 갈등이면서 동시에 언제 어디서나 어느 부부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갈등이기도 하다.
외할머니 순자가 등장하면서 영화에는 또 다른 긴장이 생긴다. 아이들이 기대했던 할머니와는 너무 다르다. 남의 컵에 입을 대고 물을 마시는 것도 이상하고, 화투를 치면서 욕을 하는 모습도 아이들에게는 낯설다. 특히 데이빗에게는 “할머니가 할머니답지 않다”는 생각이 있다. 그런데 이 갈등도 꼭 한국과 미국의 문화 차이 때문이라고만 볼 수는 없다. 한국에서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세대 간의 갈등이다. 처음에는 불편하고 이해하기 어려웠던 할머니의 모습이지만, 할머니가 약해지고 위중해지면서 가족의 마음도 달라진다. 약해진 할머니를 사랑하는 마음이 그 모든 차이를 덮어가기 시작한다. 나는 뇌졸중으로 몸이 불편한 할머니를 두 아이가 부축하면서 밤길을 천천히 걷는 장면이 가슴 뭉클하게 좋았다.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고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도 있지만, 어느 순간 그것보다 그 사람 자체를 사랑하는 마음이 커지는 것. 이해되어서 사랑하는 게 아니라, 사랑하면서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미나리》는 그것을 아주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왜 하필 농사였을까
나는 제이콥이 선택한 것이 농사였다는 점에 주목한다. 병아리 감별사였던 제이곱에게는 농장으로 성공하고 싶은 꿈이 있다. 그러나 농장 일에는 식당, 세탁소, 가게 같은 서비스업에 종사하면서 겪는 어려움과는 다른 종류의 어려움이 있다. 좋은 땅을 구해야 하고, 우물을 찾아야 하고, 농산물을 팔아서 돈으로 만드는 일까지 해야 한다. 기후가 도와주지 않으면 모든 노력이 한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다. 농사는 본토인들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 일을 낯선 나라에 온 이민자가, 도시의 편리함도 없는 시골에 살면서 자기 힘으로 해내려고 한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가 그런 삶을 선택한 사람들에게 조용한 격려를 보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게 《미나리》라는 영화가 가진 또 하나의 힘이 아닐까.
구태의연한 인종 갈등이 없는 이민 영화
흔히 이민자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들은 미국인과 이민자의 갈등을 중심에 놓기 쉽다. 하지만 《미나리》는 다르다. 오히려 제이콥이 미국인을 고용한다. 그가 농산물을 팔면서 겪은 어려움의 상대 역시 미국인이 아니라 한국인이었다. 한국인은 무조건 피해자이고 미국인은 가해자라는 식으로 단순하게 나누지 않는다. 제이콥이 미국에서 차별 받아서 힘들어했다는 얘기는 전혀 없다. 영화 속 미국은 한국인이 차별받는 곳도 아니고, 기회의 땅도 아니고, 그냥 온갖 사람들이 뒤섞여 살아가는 실제적인 생활 공간이다. 이게 영화가 상당히 성숙하게 느껴지는 이유 중 하나인 것 같다.
아이들과 할머니의 갈등 역시 한국과 미국의 문화 충돌이라기보다 한 가족 안에서 생길 수 있는 세대 간의 갈등으로 풀어나간다. 그래서 이 영화는 이민자의 이야기이면서 어느 순간 그냥 사람들의 이야기가 된다.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미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지만, 그들의 삶의 문제는 우리가 어디에 살든 겪을 수 있는 문제와 크게 다르지 않다.
화재 사건, 그리고 설명 없는 결말
영화의 분기점은 화재 사건이다. 뇌졸중으로 몸이 불편한 할머니가 집안 일을 돕는다고 하다가 결국 화재를 일으킨다. 화재가 모든 것을 태워버렸지만, 그 순간 제이콥과 모니카의 갈등도 함께 태워버린 듯 둘은 다시 서로를 붙잡는다. 다시 우물 자리를 찾고, 다시 시작할 준비를 한다. 그리고 제이콥과 데이빗은 미나리를 뜯으러 간다. ‘미나리 맛있겠다’ 그리고 갑자기 영화가 끝난다. 마지막 장면에서 ‘어? 이게 끝이야?’ 라는 느낌이 든다. 내가 감독이라면 ‘이후 미나리로 다시 일어섰다 또는 결국 캘리포니아가 아닌 아칸소에 정착했다’ 라고 설명해주고 끝낼텐데《미나리》는 그걸 안 하고 끝낸다.
이 마지막 장면을 생각하면서 나는 이 영화가 무엇을 이야기하려고 하는지 조금 알 것 같았다. 제이콥 가족이 낯선 땅에 뿌리를 내리려고 애쓰는 동안에도, 화재가 모든 것을 태우는 순간에도, 미나리는 개울가 안전한 곳에서 조용히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사람들이 모든 것을 잃었다고 생각한 순간에도 미나리는 살아 있었다. 온갖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이 가족은 아직 살아있고, 계속 살아간다는 것을 영화가 보여주고 싶었던 것 아닐까? 자기가 저지른 실수를 참담하게 바라보는 순자의 표정, 그리고 파릇파릇 힘차게 올라오는 미나리의 대조, 거기에 무슨 부연설명이 필요하겠는가? 미나리는 희망이다. 좌절 속에서도 희망은 자기 방식으로 자라난다. 어디에 심어도 잘 자라고, 누구에게나 자기 향을 내어주며, 쉽게 사라지지 않는 미나리. 낯선 땅에 옮겨 심어졌지만 미나리는 미나리인 채로 자란다. 제이콥 가족도 마찬가지다. 어디에 살든 자신의 뿌리와 향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것. 어쩌면 그것이 《미나리》가 보여주는 삶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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