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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영화 《더 파더》 치매 환자의 세계를 잠시 경험한다는 것 | 정보와 줄거리 | 평가와 반응

카이로스11 2026. 9. 27. 11:39

목차


    정보와 줄거리

     

    정보

      • 영화 제목:《더 파더》 (The Father, 2020)
      • 감독: 플로리안 젤레르(Florian Zeller)
      • 출연: 앤서니 홉킨스, 올리비아 콜맨, 마크 게이티스, 루퍼스 시웰, 이모젠 푸츠, 올리비아 윌리엄스
      • 장르: 드라마
      • 러닝타임: 97분
      • 원작: 플로리안 젤레르의 연극 《The Father》
      • 한국 개봉: 2021년 4월 7일
      •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앤서니 홉킨스)과 각색상을 수상.

     

    줄거리

    80세의 앤서니는 런던의 아파트에서 혼자 살아가며 자신이 아직 충분히 독립적으로 생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딸 앤은 아버지를 돌보기 위해 여러 도움을 마련하지만, 자신도 더 이상 매일 아버지를 찾아갈 수 없는 상황에 놓인다. 그러던 어느 순간부터 앤서니가 알고 있던 사람과 공간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다. 익숙했던 집의 모습이 바뀌고, 자신이 기억하는 사실과 주변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내용이 맞지 않는다. 영화는 이 모든 상황을 관객에게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앤서니가 느끼는 혼란을 관객이 함께 경험하도록 만든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동안 관객 역시 끊임없이 묻게 된다. “도대체 누가 이상한 걸까?” 영화의 공식 소개 역시 앤서니의 기억이 흔들리면서 그의 정체성과 과거를 얼마나 붙잡을 수 있는지, 그리고 그 곁에서 아버지를 잃어가는 앤이 어떤 고통을 겪는지를 중심에 두고 있다.

     

    평가와 반응

    《더 파더》는 특히 앤서니 홉킨스의 연기와 치매를 주관적인 경험으로 전달하는 독특한 연출에 대해 높은 평가를 받았다. 로튼토마토에서는 평론가 98%, 관객 88%를 기록하고 있으며, 평론가들은 이 작품이 치매를 단순히 기억을 잃어가는 병으로 설명하는 대신, 환자가 실제로 경험하는 혼란과 공포를 관객에게 직접 느끼게 한다는 점을 높게 평가했다. 특히 앤서니 홉킨스의 연기는 이 영화의 가장 큰 강점으로 꼽힌다. 자신이 정상이라고 믿는 사람의 당혹감과 불안, 그리고 조금씩 무너지는 감정을 과장하지 않고 섬세하게 표현했다는 평가가 많다. 또한 영화의 공간과 등장인물을 의도적으로 변화시키면서 관객이 앤서니의 혼란을 직접 경험하도록 만든 연출 역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 작품은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과 각색상을 수상했으며, 특히 80대 배우인 앤서니 홉킨스의 남우주연상 수상은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치매 환자의 세계를 잠시 경험한다는 것 

    관객이 느낀 혼란 — 도대체 누가 이상한 걸까 

    영화를 처음 보기 시작했을 때 정말 머리가 빙빙 돌았다. 도대체 누가 이상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앤서니가 치매 환자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처음부터 모든 것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어떤 것은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었고, 어떤 말은 너무나 정상적이었다. 앤이 이상한 것 같기도 했다. 어떤 순간에는 분명 나쁜 딸처럼 보였다. 아버지를 요양원에 보내려고 남편과 모의를 하는 것처럼 보이는 장면도 나온다. 혹시 등장인물들이 다 함께 아버지를 이상한 사람으로 몰아가고 있는건 아닌가? 그러면서 앤서니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펼쳐지기도 한다. 분명 조금 전까지 보았던 사람이 사라지고 다른 사람이 나타난다. 앤의 남편이라고 하는 남자도 두 사람이다. 집의 모습도 조금씩 달라진다. 처음에는 그저 이상하다고 느끼던 앤서니의 표정에 점점 혼란스러움이 나타난다. 관객도 처음에는 앤서니의 편에 서서 앤서니의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게 된다. 도대체 누가 이상한 걸까? 앤서니가 치매 환자 맞나?

    앤서니가 느낀 혼란, 그리고 공포

    우리는 흔히 치매라고 하면 인지 기능이 점점 떨어지고, 기억을 잃고, 결국 어린아이처럼 되어버리는 모습을 생각한다. 그런데 《더 파더》에서 영화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그 마지막 모습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마지막에 도달하기 전, 앤서니가 겪었던 기나긴 혼란의 시간을 보여주고 있다. 앤서니는 여전히 자신이 정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조금씩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내가 기억하는 사실과 주변 사람들이 말하는 사실이 맞지 않는다. 가장 무서운 것은 아마 이것일 것이다. 나는 정상이라고 생각하는데, 세상은 내가 이상하다고 말한다. 아무도 내 말을 믿어주지 않는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나 자신도 의심하게 된다. ‘내가 이상해진 건가?’ 혼란은 곧바로 공포로 이어진다. 내가 이상해지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면서도 무엇이 이상한지 정확하게 알 수 없는 것. 이것이 앤서니가 겪었던 무시무시한 공포가 아닐까. 이것은 정상적인 사람이 쉽게 경험해볼 수 없는 공포다

     

    그래서 영화에서 앤서니는 유난히 집과 시계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집은 내 집이다” 자신이 속한 공간을 붙잡으려는 것이다. 누구의 시계를 보면 내 시계를 훔쳐간 것은 아닌지 의심한다. 그는 또  여러 번 시간을 묻는다. “지금이 몇 시인가.” 시간을 붙잡으려는 것이다. 공간과 시간을 장악할 때 자신이 누구인지,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인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앤서니에게 집과 시계는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자신의 세계를 붙잡기 위한 마지막 끈처럼 보였다. 그리고 더 깊이 생각해보면 시간은 또 다른 의미를 갖는다. 내게 남은 시간은 얼마나 되는가. 영화가 이것을 직접적으로 말하지는 않지만, 나는 시계에 대한 앤서니의 집착에서 그런 불안까지 느껴졌다.     

    치매를 밖에서 바라보는 것과 환자의 세계를 잠시 경험한다는 것의 차이

    영화가 진행되면서 관객은 서서히 앤서니와 함께 느꼈던 혼란스러움에서 벗어나 앤서니를 치매 환자로 바라보는 위치로 옮겨간다. 어떤 장면이 실제이고 어떤 장면이 앤서니의 기억이나 상상일까? 그런데 영화는 끝까지 명확한 답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그게 이 영화의 무서운 점이다. 그러나 앤서니에게는 자신이 경험하는 모든 것이 현실이다. 어떤 남자와 대화를 했다면, 그 대화는 앤서니에게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 그가 집에서 누군가를 보았다면, 그것 역시 그에게는 실제다. 관객이 그것을 의심할 뿐이다. 이 영화에서는 환상과 현실의 경계가 단순히 “실제로 일어난 것 / 일어나지 않은 것”으로 나누어지지 않는다. 앤서니에게는 상상으로 만들어진 것조차 현실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것이 치매라는 질병을 밖에서 바라보는 것과, 환자의 입장에서 경험하는 것의 차이일지도 모른다. 


    나는 처음에는 영화를 이해하려고 애쓰면서 봤다. 그런데 이해하려고 하면 할수록 더 혼란스러웠고, 심지어 어지러움을 느끼기도 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내가 영화를 이해하지 못해서 혼란스러웠던 것이 아니었다. 잠시나마 앤서니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 안에 그와 함께 들어가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정확히 감독의 의도였다. 관객으로 하여금 치매 환자의 세계를 잠시 경험하게 한 것이다. 정신이 무너진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그리고 그런 사람의 곁에 있는 삶 또한 얼마나 힘든 것인지를 동시에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마지막에 앤서니가 찾은 사람

    가장 오래 기억에 남는 장면은 백발노인 앤서니가 ‘엄마 보고 싶어. 나 집에 갈래’ 하면서 우는 장면이다. 간호사 캐서린을 자신의 어머니라고 생각하고 그 품에 안겨 어린아이처럼 울다가 잠들 듯 조용해진다. 단순히 “치매가 심해져서 어린아이처럼 되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장면이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면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 혼란스러움의 한복판에서 공포와 불안을 경험한 앤서니, 온 힘을 다해 그 상황에 저항해보려 했지만 결국 모든 힘을 소진하게 된다. 그 때 자신이 가장 안전하다고 여겨지는 곳, 아직 혼란스러움으로 오염되지 않은 공간과 시간, 그리고 자신이 처음 세상에 존재했을 때 자신을 품어주었던 사람, 엄마를 찾는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 집도 시간도 자기 자신까지도 스스로 붙잡으려고 했던 사람이 마지막에는 아무것도 붙잡지 못하고 결국 가장 오래된 기억 속으로 돌아간다. 나는 이 장면을 눈물을 삼키면서 봤다. 마지막에 앤서니가 집도, 시계도, 자신의 물건도 아닌, 그저 “엄마”를 찾는 모습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앤서니 홉킨스의 명연기가 지금도 눈에 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