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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영화 《맨체스터 바이 더 씨》 용서할 수 없는 기억을 안고 살아가는 법 | 정보와 줄거리 | 평가와 반응

카이로스11 2026. 9. 22. 11:24

목차


     

     

    정보와 줄거리

     

    정보

    • 영화 제목:《맨체스터 바이 더 씨》Manchester by the Sea
    • 개봉: 2016년 미국 / 한국 2017년 2월 15일
    • 감독·각본: 케네스 로너건
    • 장르: 드라마
    • 러닝타임: 137분
    •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 주연: 케이시 애플렉, 미셸 윌리엄스, 루카스 헤지스, 카일 챈들러
    • 한국 관객: 약 5만 4천 명
    • 씨네21 전문가 평점: 7.75
    • 씨네21 관객 평점: 8.42
    • 2017년 제89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케이시 애플렉이 남우주연상, 케네스 로너건이 각본상을 받았다. 작품상, 감독상, 여우조연상, 남우조연상 등에도 후보로 올랐다.

     

    줄거리

    보스턴에서 아파트 관리인으로 혼자 살아가는 리 챈들러는 어느 날 형 조가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고 고향 맨체스터로 돌아온다. 하지만 도착하기도 전에 형은 세상을 떠나고, 장례를 준비하던 리는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된다. 형 조가 유언으로 십대 아들 패트릭의 후견인으로 리를 지정한 것이다. 문제는 리가 맨체스터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과거에 있다. 그곳에는 전 부인 랜디와의 기억, 그리고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버린 비극적인 사건이 남아 있다. 패트릭은 자신이 살아온 맨체스터를 떠나고 싶어 하지 않고, 리는 이곳에 머무는 것이 너무나 힘든다. 결국 리는 조카를 책임져야 한다는 현실과, 과거의 기억에서 벗어나고 싶은 자신의 마음 사이에서 선택해야 한다.

     

    평가와 반응

    국내 :

    씨네21에서는 전문가 7.75점, 관객 8.42점을 기록했다. 국내 평론에서도 특히 인물의 내면을 직접 설명하기보다 거리감을 유지하면서 상처를 보여주는 연출과 배우들의 연기에 대한 평가가 눈에 띈다. 이동진 평론가는 영화에 대해 “심리적 진실의 흐름을 섬세하게 짚어가는 플롯과 연기”라고 평가했고, 김혜리는 “거리를 두는 동안에 인물의 피부 밑으로 들어가는 법”이라고 평했다. 박평식의 평도 고난과 고독의 강도를 강조한다.

     

    해외 :

    Rotten Tomatoes에서는 현재 평론가 96%, 관객 78%를 기록하고 있다. 356명의 평론가 리뷰가 집계되어 있으며, 비평가들은 케네스 로너건의 인물 중심 드라마와 깊이 있는 캐릭터 묘사를 높게 평가했다. 특히 해외 평가에서 반복적으로 언급되는 것은 상실과 애도, 가족, 고립, 죄책감, 용서, 현실적인 인물 등이다. 그리고 흥미로운 것은 “어둡고 우울한 영화지만 이상하게 삶을 긍정하게 한다”는 반응도 있다는 것이다. Rotten Tomatoes에 소개된 일부 평론 역시 이 영화를 애도와 고립을 다루면서도 생에 대한 긍정성을 남기는 작품으로 해석한다.

     

    용서할 수 없는 기억을 안고 살아가는 법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첫 장면부터 마지막 장면까지 웃지 않는 남자. 무뚝뚝하고, 말수가 적고,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무언가를 설명하려 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그 무표정 속에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엄청난 고통이 들어 있다는 것을 영화가 조금씩 보여준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서야 아주 가는 햇살 하나가 영화 전체의 어둠을 밀어내는 듯한 느낌을 주면서 숨쉴 공간을 허락한다.

    자신을 용서하지 못한 남자, 맨체스터 바이더씨를 떠나다 

    집에 화재가 발생하기 전의 리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었다. 아내 랜디와 두 딸을 둔 평범한 남편이자 아버지였다. 하지만 어느 날 밤, 맥주를 사러 마트에 다녀온 사이 집에 화재가 발생했고 두 딸을 잃었다. 리에게는 사랑하는 딸들을 잃은 슬픔과 함께, 화재가 자신 때문에 일어났다는 죄책감이 남았다. 사람들은 아마 말했을 것이다. “당신 잘못이 아니야.” 하지만 자신이 자신을 용서하지 못한다면 다른 사람의 위로는 마음 깊숙이 들어오기 어렵다. 심지어 사건을 조사하던 경찰관조차 ‘ 벽난로 안전망을 깜빡 잊고 설치 안한게 범죄는 아니죠’ 라며 리를 용서하고, 무죄 석방해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리 자신에게 리는 여전히 용서받지 못할 범죄자였다. 

     

    ‘아빠! 우리 타고 있는 거 안 보여?’ 딸들이 리의 기억과 죄책감이 만들어낸 내면의 세계 속에 나타나 말을 건다. 그러나 리의 고통은 밖으로 거의 나오지 않는다. 너무 커서 밖으로 꺼낼 수 없는 고통처럼 보인다. 그래서 리의 무표정은 무감정이 아니라, 감정을 더 이상 밖으로 꺼내지 않는 방식으로 살아남으려는 것처럼 느껴진다. 리에게 맨체스터는 더 이상 고향이 아니었다.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사람들을 잃은 곳, 그리고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는 기억이 살아 있는 곳이었다. 그래서 그는 그곳을 떠났다.

    다시 돌아온 맨체스터

    그런데 형인 조가 죽으면서 리는 다시 맨체스터로 돌아오게 된다. 그가 다시 맨체스터로 돌아가는 것은 자신이 도망쳐 나온 기억의 장소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 힘드는 일이다. 거기에 설상가상으로 조의 유언에 따라 조카 패트릭의 후견인이 되어야 했는데 리는 그 일을 너무 힘들어한다. 리의 사정을 잘 아는 조의 변호사가 리에게 말한다. “당신이 겪은 고통을 아무도 이해하지 못합니다. 정말 원하지 않는다면 후견인 안하셔도 됩니다.”

     

    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 리는 창밖으로 지나가는 자신의 모습을 본다. 화재가 나던 날, 가족이 불타고 있는 그 시간에 마트로 걸어가고 있는 무책임하고 무능한 가장의 모습, 다시 반복되어서는 안되는 장면이다. 그 순간 리는 현실로 돌아온다. 갈 곳 없는 미성년자 패트릭, 하나 남은 핏줄, 그에게는 지금 어른이 필요하다. 리가 지금 만약 패트릭을 포기한다면, 한 번 가족을 지키지 못했던 사람이 또다시 자신에게 주어진 가족에 대한 책임을 외면하는 일이 될 수 있다. 물론 이것은 영화가 직접 설명하지 않는 나의 해석이다. 하지만 이후 리의 행동을 보면 그렇게 생각하게 된다.

    자신을 용서할 수 없는 사람도, 다른 사람을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화재가 나던 날, 리는 경찰서에서 경찰의 총을 이용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한 적이 있다. 리의 마음은 여전히 그날 밤에 멈춰 있는데, 몸은 오늘을 살아내야 한다. 이게 리의 비극인 것 같다.  그런데 조의 죽음이 그 문을 다시 열어버린다. “이제 네가 패트릭을 책임져라.” 그리고 여기서부터 이 영화의 진짜 질문이 시작되는 것 같다. 자신을 용서할 수 없는 사람도, 다른 사람을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삶을 포기하려 했던 사람이 다른 사람의 삶을 책임지기 위해 다시 삶의 문제에 뛰어들 수 있을까? 

     

    리의 문제는 맨체스터에서 더 이상 살 수 없다는 것이지, 패트릭을 포기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다. 맨체스터는 자기 자신을 용서하지 못할 이유가 가장 생생하게 살아 있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맨체스터에서 도망칠 생각만 했다. 그러나 이제는 “패트릭이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을까?”를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한다. 죽으려고 했던 사람이 이제는 다른 사람의 삶을 위해 미래를 계획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리의 고통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맨체스터에서 패트릭의 삶을 정리해 주고 나서 리가 떠나려 하자 패트릭이 묻는다. “삼촌은 왜 가려고 해?” 리의 대답은 짧다. ‘못 버티겠어...’ 이 말은 맨체스터에 있는 동안 리가 자신의 과거와 계속 싸우고 있었다는 말이다. 패트릭을 돕는 과정에서 리의 자살충동이 사라졌을까? 영화는 거기에 답을 주지 않는다. 다만 이제 더 이상은 버틸 수 없다고 말할 뿐이다.

    누가 누구를 구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영화에서 리는 패트릭의 유일한 혈연이고, 미성년자 패트릭의 자립을 도운 유일한 인물이다. 처음에는 리에게 패트릭은 정말로 피하고 싶은 무거운 책임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조카 패트릭을 위해 자신의 벽을 허무는 사람이 된다. 리는 보스턴에 집을 구할 계획을 얘기하면서 패트릭이 들어올 수 있는 공간도 함께 마련할 것이라고 말한다. 대학을 보스턴으로 온다면 거기서 머물 수도 있다. 만약 네가 안 온다면 창고로 쓰겠다. 어쨌든 너를 위한 공간은 있다는 얘기다. ‘가끔 놀러 와’  이 영화 전체에서 가장 따뜻하고 가장 밝은 순간이 아닐까? 자살을 생각하던 사람이 조카의 미래를 생각하는 삼촌이 된 것이다.

     

    영화는 리가 자신을 용서했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의 상처가 사라졌다고도 말하지 않는다. 과거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 일이 있었음에도 내가 아직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가는 것. 그것이 리에게 주어진 아주 작은 가능성인지도 모르겠다. 한 지점에서 멈춰버린 삶을 다시 움직이게 만들 수 있는 가능성, 어쩌면 자신을 용서하는 일도 그렇게 시작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리가 패트릭을 도운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패트릭이라는 상황이 리에게 다시 누군가를 사랑하고 책임질 기회를 만들어준 것은 아닐까? 

     

    어쩌면 이 영화가 말하는 희망은 이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상처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상처를 가진 채 다시 누군가의 곁에 서는 것. 자신을 용서하지 못한 사람도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고,  과거를 지울 수 없는 사람도 내일의 삶을 조금씩 만들어갈 수 있다는 것. 처음부터 끝까지 어둡고 무거웠던 영화에 아주 가는 빛이 들어온다. 그리고 리와 패트릭은 다시 바다로 나간다. 리에게 맨체스터는 여전히 아픈 곳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곳에 패트릭이 함께 있다. 삼촌과 조카가 아무 말 없이 그 회한의 바다에 낚싯대를 드리우는 것으로 영화는 끝난다. 마치 여기가 우리의 고향이라는듯이.